한눈에 보기
• 중고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빠르게 값이 떨어진다. 유럽 5개국의 순수전기차 3년 잔존가치는 2022년 약 50%에서 2025년 35%로 내려앉았고, 같은 기간 중고차 시장 전체 평균(60%→50%)보다 하락 폭이 컸다.
• 그런데 배터리 자체는 예상보다 오래 간다. 2만 2,700대를 분석한 실차 데이터에서 연평균 열화율은 2.3%, 8년 후 잔존용량은 81.6%였다. 3만 대 이상을 추적한 조사에서 배터리 완전 교체율은 4% 미만이다.
• 즉 감가의 상당 부분은 배터리의 물리적 수명이 아니라 “배터리 상태를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이것이 경제학이 말하는 레몬시장이다.
• 실제로 독립 배터리 인증서가 붙은 중고 전기차에 구매자들은 550~1,100유로를 더 낼 의향을 보였고, 구매 고려 비율은 61%에서 83%로 올라갔다.
• 한국은 배터리 이력관리제(2025년 2월)와 안전성 인증제를 시작했고 사용후 배터리법은 2027년 5월 시행된다. 그러나 진단 장비를 갖춘 민간 정비업체는 17%, 전기차 정비가 가능한 업체는 5% 미만이다. 제도는 앞서가는데 인프라가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전기차를 고민하는 사람이 대리점에서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은 이제 주행거리가 아니다. “몇 년 타고 팔 때 얼마 받나요?”다. 그리고 판매사원이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이것이다.
2026년 상반기 한국의 중고 전기차 거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한 플랫폼 집계에서는 전년 대비 103.6% 증가했고, 다른 집계는 57% 증가로 잡았다. 2026년 6월 한 달만 봐도 중고 전기차 거래는 6,386대로 전년 동월 대비 50.3% 늘었다. 국내 전기차 누적 등록은 6월 말 109만 5,218대로 100만 대를 넘었다. 신차가 100만 대를 넘었으니 중고 물량이 쏟아지는 것은 산수의 문제다.
문제는 그 물량에 붙는 가격이다. 이번 글은 중고 전기차 가격을 결정하는 단 하나의 변수, 배터리 잔존수명(SoH)이 왜 아직도 값으로 환산되지 못하는지, 그리고 그 실패가 누구의 지갑에서 얼마를 빼내고 있는지를 다룬다.
1. 먼저 용어: SoH는 하나의 숫자가 아니다
SoH(State of Health)는 배터리의 건강 상태를 백분율로 나타낸 값이다. 새 배터리를 100%로 두고 지금 얼마나 남았는지를 표시한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SoH에는 학계와 업계가 합의한 단일 정의가 없다. 크게 용량 기준(지금 담을 수 있는 전기량 ÷ 처음 담을 수 있던 전기량)과 저항 기준(내부저항이 얼마나 늘었나)의 두 갈래가 있고, 두 지표는 열화 원인이 달라 같은 배터리에서도 다른 숫자를 낸다(Chen 외, Materials, 2025, DOI 10.3390/ma18010145). 국내 연구에서도 실험실의 정전류 충방전과 실제 주행 프로파일이 달라 동일 지표조차 셀·모듈·팩 단위로 값이 벌어진다는 점이 지적된다(오국환·조현창, Journal of Sensor Science and Technology, 2023).
2025년 뮌헨공대 연구진은 더 직설적으로 썼다. 차량 단위 SoH의 표준 정의와 측정 절차가 아예 확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EU 배터리 규정이 “에너지 기반 SoH”를 의무화하면서도 구체적 측정 기준을 제시하지 않아, 제조사마다 다른 기준이 적용되는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논문은 경고한다(Bilfinger 외, npj Clean Energy, 2025, DOI 10.1038/s44406-025-00010-8).
이 사실을 먼저 짚는 이유가 있다. 이후 등장하는 모든 숫자, 모든 제도, 모든 분쟁의 뿌리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중고차 시장은 값을 매기려 하는데, 값의 근거가 될 눈금자가 아직 없다.
2. 숫자로 본 감가: 전기차는 정말 더 빨리 떨어진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26년 전기차 전망은 이 흐름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영국 5개국에서 순수전기차의 3년 잔존가치는 2022년 약 50%에서 2025년 35%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중고차 시장 전체 평균은 60%에서 50%로 내려갔다. 즉 시장 전체가 조정을 받는 와중에도 전기차가 더 크게 맞았다. 중국은 2024년 46%에서 2025년 말 42%로, 미국의 순수전기차는 중고차 시장 평균보다 약 25%포인트 낮은 잔존가치를 기록했다(IEA, Global EV Outlook 2026).
한국: 3년에 절반
국내 데이터도 비슷하다. 2022년식·주행 10만km 이하 차량을 3년 뒤 기준으로 비교한 조사에서 아이오닉5 롱레인지는 49%, EV6는 53%, 테슬라 모델3 롱레인지는 57%, 모델Y 롱레인지는 55% 하락했다. 같은 기준에서 국산 가솔린차 평균은 33.6% 하락이었다.
다만 최근 반등 신호도 있다. 2026년 6월 국내 중고 시세에서 EV6는 전월 대비 3.3%, 모델3 하이랜드는 3.7%, BYD 아토3는 6.2% 올랐다. 2,000만~3,000만원대 매물에 수요가 몰리면서다. 값이 충분히 떨어지자 비로소 수요가 붙은 것이다.
미국: 5년 평균 57% 손실, 그러나 바닥은 지났다
미국에서는 95만 대 이상의 5년차 차량을 분석한 결과 전기차의 5년 감가율이 평균 57.2%로 나타났다. 닛산 리프 63.1%, 테슬라 모델S 62.0%, 폭스바겐 ID.4 62.1%로 최악 구간을 형성했다(iSeeCars 분석, Forbes, 2026-04-08).
그런데 2026년 들어 방향이 바뀌었다. 108개 모델·연식 조합을 볼륨 가중으로 계산한 결과 중고 전기차 가격은 2026년 상반기 5.1% 올랐고, 7월 중순 기준 연초 대비 7% 상승했다. 2023년형 볼트EV는 19.7%, 모델3는 10.3% 올랐다(Recurrent Auto, 2026년 3분기 리포트). 판매량도 2026년 1분기 9만 3,500대로 전년 대비 12% 늘었는데, 같은 기간 신차 전기차 판매는 28% 줄었다(Cox Automotive). 신차는 식고 중고는 뜨는 역전이다.
단, 세그먼트가 갈린다. 2026년 상반기 2만 달러 미만은 9.4% 올랐지만 5만 5,000달러 이상 고가 구간은 3.3% 내렸다. 그리고 테슬라만은 시장 전체가 3.7% 반등하는 동안 5.3% 역행했다. 2023년의 대규모 신차 가격 인하가 남긴 상처다.
유럽과 중국: 정책과 가격전쟁이 만든 감가
독일은 2023년 말 보조금(소비자 최대 4,500유로)을 폐지한 뒤 2024년 순수전기차 판매가 27.4% 급감했다. 흥미로운 것은 2026년 재도입되는 소득 연동 보조금(3,000~5,000유로, 총 30억 유로)에 대한 평가다. 시장조사기관은 이 보조금이 오히려 순수전기차 잔존가치에 1.9%포인트의 하방 압력을 줄 것으로 봤다. 2~4년 뒤 보조금 차량이 중고시장에 한꺼번에 유입되기 때문이다(Autovista24). 신차를 밀어주는 정책이 중고차 값을 누르는 구조적 역설이다.
중국은 결이 다르다. 중국자동차유통협회 집계에서 2025년 중고차 거래는 2,010만 대였고 그중 신에너지차는 160만 대(7.9%)였다. 순수전기차의 3년 보존율은 2023년 12월 51.9%에서 2025년 7월 42.8%로 떨어졌다(CADA, 관련 분석). 현지 매체는 원인을 “감가 철삼각”으로 요약한다. 원가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배터리의 세대교체 속도, 끝없는 신차 가격전쟁, 내연기관차보다 20~30% 높은 정비 비용이다(36Kr). 신차 값이 준신차 값 아래로 떨어지면 중고차는 방어할 재간이 없다.
3. 반전: 배터리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 간다

여기서 이 글의 핵심 모순이 등장한다. 값은 반토막이 나는데, 물건은 멀쩡하다.
차량 텔레매틱스 업체 지오탭이 21개 차종 2만 2,700대 이상의 실차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연평균 열화율은 2.3%, 8년 후 평균 잔존용량은 81.6%였다. 100kW 초과 급속충전을 자주 쓴 그룹은 연 3.0%로 8년 후 76%, 완속 위주 그룹은 연 1.5%로 8년 후 88%였다(Geotab, 2026년 갱신판). 충전 습관이 8년 뒤 용량을 12%포인트 갈랐다는 뜻이다.
더 결정적인 숫자는 교체율이다. 3만 대 이상을 추적한 조사에서 배터리 완전 교체율은 4% 미만이었다. 1세대 초기 전기차는 8.5%였지만 2022년식 이후 차량은 0.3%로 떨어졌다(Recurrent Auto, 2025-11). 영국의 진단업체가 36개 제조사 8,000건 이상을 실측한 결과에서는 전체 평균 SoH가 95.15%, 8~9년식 중앙값이 85%였다(Electrek, 2026-02-18).
혹독한 조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폭스바겐 ID.3는 4년간 약 16만km를 급속충전 40% 이상·알프스 겨울 영하 9도 등의 조건으로 달린 뒤에도 잔존용량 91%를 유지했다(ADAC 장기 내구시험). 국내 사례로는 영업용 아이오닉5가 2년 9개월간 58만km를 주행한 뒤 정밀평가에서 SoH 87.7%를 기록했다(현대자동차그룹).
학술적 근거도 이 방향을 지지한다. 스탠퍼드 연구진이 상용 셀 92개를 47가지 방전 프로토콜로 시험한 결과, 실제 주행과 유사한 동적 방전은 실험실 표준인 정전류 방전보다 등가 완전사이클 수를 최대 38% 늘렸다. 실험실 예측이 실제 수명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는 뜻이다(Geslin 외, Nature Energy, 2024, DOI 10.1038/s41560-024-01675-8).
다만 반례는 존재한다. 평균이 좋다는 것이 모든 차가 좋다는 뜻은 아니다. 코나 일렉트릭은 배터리 셀 제조 결함으로 8만 1,701대가 리콜됐고 비용 약 1조 1,205억원이 발생했다. 쉐보레 볼트EV는 약 14만 대 리콜 후 소프트웨어로 충전량을 80%로 제한했고, 2024년 1억 5,000만 달러 집단소송 합의로 대당 700~1,400달러를 보상했다. 즉 “평균적으로 오래가지만 특정 로트와 초기 모델은 예외”라는 이중구조가 실재한다. 이 이중구조가 바로 개별 차량을 진단해야 할 이유다.
4. 그렇다면 값은 왜 떨어지나 — 감가의 다섯 원인

첫째, 기술 세대교체.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신차 배터리 용량은 평균 167% 늘었다. 3년 전 차의 주행거리가 오늘 신차의 절반이면, 배터리가 멀쩡해도 상품성은 반값이다. 스마트폰과 같은 논리가 2,000만원짜리 자산에 적용된다.
둘째, 신차 가격 인하와 보조금. 신차 가격이 내려가면 중고차는 즉시 그 아래로 눌린다. 중국의 가격전쟁, 테슬라의 인하, 한국의 보조금(2026년 국고 최대 400만원)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작용한다.
셋째, 리스 반납 물량. 미국은 2026년 약 21만 5,000대의 전기차가 리스 만기로 시장에 나오고, 2027년에는 100만 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Edmunds 전망). 영국에서는 리스·렌탈사의 64%가 2026년 중 전기차 잔존가치의 추가 하락을 예상했다(BVRLA 조사). 국내 렌터카 업계가 중국산 전기차 도입에 신중한 이유도 같다. 중고 시세 데이터가 축적되지 않아 잔존가치를 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넷째, 수리비와 보험. 2025년 배터리 팩 평균 가격은 kWh당 108달러까지 내려왔지만(LFP 81달러, NMC 128달러, BloombergNEF), 국내 교체 견적은 여전히 차값의 46~47% 수준이다. 코나는 배터리 2,644만원으로 차값의 61%, 레이는 75%에 달했다(소비자주권시민회의 조사). 문제는 이것이 곧 경제적 전손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구조적 배터리 설계에서는 셀이 차체에 접착되어 개별 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독일 보험사 데이터에서 배터리 손상은 건수는 적어도 전체 클레임 비용의 8%를 차지했다. 미국 전기차 보험료는 내연기관차보다 27% 높다.
다섯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 정보 비대칭. 앞의 네 가지는 시간이 지나면 완화된다. 기술 발전은 언젠가 둔화하고, 가격전쟁은 끝나고, 리스 파동은 지나가고, 배터리 값은 계속 떨어진다. 그러나 다섯째는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5. 레몬시장: 증명할 수 없는 것은 값을 받지 못한다
1970년 조지 애컬로프는 중고차 시장을 예로 들어, 판매자만 품질을 알고 구매자는 모를 때 시장이 어떻게 붕괴하는지를 설명했다. 구매자는 최악을 가정해 값을 깎고, 좋은 차의 주인은 그 값에 팔지 않으니 시장을 떠나고, 남는 것은 불량품(레몬)뿐이다. 이 논문으로 그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2025년 한 연구는 이 이론을 그대로 전기차에 적용했다. 기존 내연기관 중고차 시장은 보증·인증중고차·사고이력 조회로 정보 격차를 메웠지만, 전기차는 주행거리와 사고이력으로 배터리 상태를 알 수 없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Hui Wang, “From Lemons to Batteries”, SSRN, 2025). 배터리는 차량 원가의 최대 45%를 차지하는데, 그 45%의 상태를 증명할 방법이 없으면 신뢰할 수 있는 잔존가치 산정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것이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다. 중고 전기차를 고려하지 않는 미국 소비자의 80%가 배터리 가치에 회의적이라고 답했고, 한 분석기관은 배터리 건강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만으로 차량당 약 450유로의 가치가 더해진다고 추정했다(Canary Media).

오스트리아의 독립 배터리 진단업체가 집계한 수치는 더 구체적이다. 독립 인증서가 있는 중고 전기차에 구매자들은 550~1,100유로를 더 지불할 의향을 보였다. 인증서가 없을 때 구매를 고려한 비율은 61%였지만 있을 때는 83%로 올랐고, 판매 성공 가능성은 약 36% 높아졌다. 유럽의 한 경매 플랫폼에서는 인증서 도입 후 9개월간 입찰이 29.3%, 판매전환율이 33.4% 상승했다(AVILOO).
정리하면 이렇다. 중고 전기차의 감가 중 일부는 배터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배터리가 좋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해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 증명서 한 장의 값은 시장에서 이미 550~1,100유로로 매겨져 있다.
6. 그 증명서는 왜 아직 흔하지 않은가 — 기술의 간극
진단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기화학 임피던스 분광(EIS)은 배터리 내부 상태를 단일 값이 아닌 스펙트럼으로 읽는다. 국내 업체는 3세대 EIS에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결합해 오류 확률 5% 이하, 진단 시간을 수 분 이내로 줄였다고 밝혔다(매거진한경). 증분용량분석(ICA)이나 미분전압분석(DVA)은 충방전 곡선의 미세한 변형으로 열화 원인까지 구분한다.
문제는 실험실 정확도와 실차 정확도의 간극이다. 리뷰 논문이 정리한 기법별 오차는 용량 기반 0.2~2%, 저항 기반 0.0017~2%, 머신러닝 1.27~4.5% 수준이다. 그런데 실차 300대의 3년치 운행 데이터를 사용한 연구에서 최고 모델의 평균 오차는 2.83%였고, SoH가 85% 미만으로 떨어진 구간에서는 4.69%로 커졌다(Liu 외, Nature Communications, 2025, DOI 10.1038/s41467-025-56485-7). 정작 진단이 가장 필요한 노후 구간에서 오차가 가장 크다는 뜻이다.
어느 리뷰 논문은 더 냉정하다. 머신러닝 기반 추정은 “실험 환경에서는 이상적이나 실제 공학적 응용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결론지었다(Das & Kumar, Clean Energy, Oxford, 2023, DOI 10.1093/ce/zkad054). 중국 현지 분석에서도 같은 차량의 건강도가 측정 온도에 따라 최대 8%까지 벌어졌다.
여기에 데이터 접근권 문제가 겹친다. 가장 정확한 배터리 이력은 제조사 서버에 있는데, 제조사는 이를 열지 않는다. 미국 독립 정비소의 51%가 데이터 접근 제한으로 차량을 딜러십으로 되돌려 보내야 한다고 응답했고, 딜러십 수리비는 독립 정비소보다 최대 36% 비싸다(Fortune, 2026-07-19). 수리권 법안이 추진되지만 완성차 업계는 경쟁력과 사이버보안을 이유로 저항한다.
7. 제도의 시계: 2025~2027년에 무엇이 바뀌는가

| 지역 | 제도 | 시점 | 핵심 내용 |
|---|---|---|---|
| 한국 | 배터리 이력관리제 | 2025-02-14 | 등록원부에 배터리 식별번호 기재, 2027년까지 전주기 시스템 완성 |
| 한국 | 배터리 안전성 인증제 | 2025-02-17 | 제조사 자기인증에서 정부 사전 인증으로 전환 |
| 한국 | 자동차관리법 개정 | 2026-06-03 | 판매 시 구동축전지 제조사·용량·전압 정보 제공 의무 |
| 한국 | 사용후 배터리법 | 2027-05-27 | 성능평가·등급분류·안전검사 의무, 3년 주기 정기검사 |
| EU | 배터리 여권 | 2027-02-18 | 규정 2023/1542, 용량감소는 공개·잔여용량은 제한적 접근 |
| 미국 | CARB ACC II | 2026 모델연도 | 8년/10만마일 SoH 70%→75%, 소비자 대면 상태 표시 |
| 중국 | GB 38031-2025 | 2026-07-01 | 열확산·바닥충격·급속충전 300회 후 단락시험 강화 |
방향은 분명하다. 세계가 동시에 배터리 정보를 공개 대상으로 전환하고 있다. 특히 EU 배터리 여권은 2027년 2월 18일부터 전기차 배터리에 의무 적용되는데, 설계가 흥미롭다. 정격용량과 용량감소는 모두에게 공개하되, 잔여용량·충방전 사이클 수·내부저항 변화 같은 동적 데이터는 “정당한 이해관계자”에게만 열린다(Battery Pass 콘텐츠 가이던스). 일반 중고차 구매자가 어디까지 볼 수 있을지는 아직 이행규정에 달려 있다.
미국은 캘리포니아가 앞선다. 2026 모델연도부터 8년/10만마일 동안 용량 임계값을 70%(점진적으로 75%)로, 주행거리 기준으로는 10년/15만마일 동안 2026~2029년형 70%, 2030년형 이후 80%를 유지하도록 요구한다(CARB ACC II). 반면 연방 차원의 중고 전기차 세액공제(최대 4,000달러)는 2025년 9월 30일 이후 취득분부터 폐지됐다. 규제는 강화되고 지원은 후퇴하는 엇갈림이다.
8. 한국의 구조적 공백: 제도는 앞서고 인프라는 뒤처진다
한국의 제도 진척은 결코 느리지 않다. 배터리 이력관리제와 안전성 인증제가 2025년 2월 시행됐고, 정보 공개 항목은 6종에서 10종으로 확대되며 미공개·허위제공 과태료가 50만원에서 최대 1,000만원으로 올랐다. 화재 결함은 2회 반복 시 즉시 인증 취소된다(2026년 3월 입법예고). 사용후 배터리법은 2026년 5월 공포되어 2027년 5월 시행된다.
문제는 그 제도를 집행할 물리적 기반이다. 민간 정비업체 중 배터리 진단장비를 보유한 곳은 17%, 전기차 정비가 가능한 업체는 5% 미만이다(대한금융신문). 2019년 6월 도입된 자동차 성능·상태점검 책임보험의 손해율은 2022년 82.0%에서 2024년 118.8%로 악화됐고, 점검 기준의 불명확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보험연구원, 2024). 진단할 장비도 기준도 부족한 상태에서 공개 의무를 부과하면 서류만 늘어난다.
보조금 규정이 만드는 지역 격차
또 하나의 공백은 보조금이다. 전기차 보조금에는 2년 의무운행기간이 붙는데, 운영이 지역마다 다르다. 서울·부산·인천·대구는 2년 내 타 지역 매각 시 보유 기간에 따라 지방비를 최대 70% 환수하지만, 경기 성남·고양 등은 매매 관련 규제가 아예 없다(시사위크). 같은 차가 어디에 등록됐는지에 따라 유동성이 달라지고, 그 차이가 값에 반영된다.
업계의 자발적 해법과 그 한계
공백을 업계가 먼저 메우고 있다. 기아 인증중고차는 배터리 성능과 1회 충전 주행거리를 진단해 5등급으로 나누고 3등급 이상만 판매한다(현대차그룹). 배터리 데이터 업체는 잔존수명 인증서를 발급해 중고차 플랫폼과 제휴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차값의 약 40%를 차지하는 배터리를 분리해 빌려 쓰는 구독 서비스 실증을 법인택시 대상으로 진행 중이다. 니오의 배터리 구독(BaaS)과 같은 방향, 즉 잔존가치 리스크를 소비자에서 자산관리 주체로 옮기는 시도다.
다만 보험 관점에서는 미해결 쟁점이 남는다. 배터리 가액 산정 기준, 폐배터리 소유권, 사고와 마모의 구분 기준, 수리비 기준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보험연구원, 2025).
9. 반론: 감가는 나쁜 일만은 아니다
낙관론. 값이 떨어진 덕분에 전기차의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2026년 미국에서 거래된 중고 전기차의 44%가 2만 5,000달러 미만이었고, 2만 달러 미만 전기차는 동급 가솔린차보다 약 2년 더 신형이고 주행거리도 6만km 이상 적었다(CarBuzz). IEA는 가격을 유럽 전기차 채택의 주요 장벽으로 꼽는데, 중고 시장이 바로 그 장벽을 낮춘다. 중고 전기차 시장이 성숙해야 저소득층의 접근성이 열린다는 분석도 있다(Diouf, World Electric Vehicle Journal, 2025, DOI 10.3390/wevj16010029).
비관론. 급격한 감가는 신차 수요 자체를 억제한다. 미래의 손실이 확실하다고 믿는 소비자는 오늘 신차를 사지 않는다. 학술 모델링에서는 전기차 도입 후 신차·중고차 시장 점유율이 각 50%로 균형에 이르는 데 약 26년이 걸리고, 급속한 감가상각이 그 기간을 늘린다고 추정한다(같은 논문). 유럽 리스업계의 64%는 2026년에도 추가 하락을 예상하고 있다.
회의론 — SoH 공개가 만능은 아니다. 첫째, 측정 기준이 표준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개를 의무화하면 제조사마다 다른 숫자가 시장에 풀린다(npj Clean Energy, 2025). 둘째, 소비자가 그 숫자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연구도 있다. 2025년 한 학회 논문은 이를 “SoH 착시”라 명명했다(ACM AutoUI, 2025, DOI 10.1145/3744333.3747828). 셋째, 제도가 있어도 실행되지 않는다. 온라인 중고차 매물 160개 중 배터리 인증서를 제시한 것은 50개였고, 제조사 사이트 2,600개 중에는 40개뿐이었다(Autovista24, 2025-07-29). 같은 조사에서 중고 전기차 구매 고려자의 49%가 배터리 열화를 우려한다고 답했는데도 그렇다.
덧붙이면, “SoH 공개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는 학술 문헌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회의론의 실체는 반대가 아니라 실행 가능성에 대한 신중론이다. 무엇을 어떻게 재고, 누가 검증하고, 그 비용을 누가 대는지에 대한 답이 없다는 지적이다.
10. 인사이트: 잔존가치는 배터리 값이 아니라 신뢰의 값이다
이 글의 데이터를 한 줄로 압축하면 이렇다. 배터리는 8년 뒤에도 80%가 남지만, 차값은 3년 만에 절반이 된다. 이 격차를 물리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설명하는 것은 정보경제학이다.
그래서 잔존가치를 지키는 일은 배터리를 더 좋게 만드는 일과 다른 문제다. 필요한 것은 네 가지다.
첫째, 눈금자. 무엇을 SoH라 부를지,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측정할지에 대한 표준이 먼저다. EU가 SoH를 의무화하면서도 측정 절차를 비워둔 것이 그 어려움을 보여준다. 한국은 사용후 배터리법의 성능평가·등급분류 기준을 만드는 과정에서 차량용 SoH 측정 표준을 함께 세울 기회를 갖고 있다. 2027년 5월 시행 전까지가 그 창이다.
둘째, 진단 인프라. 장비 보유율 17%, 정비 가능 업체 5% 미만이라는 숫자를 바꾸지 않으면 어떤 제도도 종이로 남는다. 배터리 진단은 정비업의 신사업이자, 중고차 유통업의 새로운 부가가치다.
셋째, 데이터 접근권. 가장 정확한 이력은 제조사에 있다. 소유자가 자기 차량의 배터리 데이터를 제3자 진단기관에 넘길 수 있는 권리를 제도화하는 것이 인증서 시장의 전제다. 이는 수리권 논의와 같은 뿌리를 갖는다.
넷째, 하한선. 잔존가치의 바닥을 받쳐주는 것은 결국 배터리의 다음 쓸모다. 사용후 배터리를 에너지저장장치로 재사용하는 시장은 2030년 연 200GWh 이상, 300억 달러 규모로 전망된다(McKinsey). 차량 잔존가치와 배터리 재사용 가치가 연결되면 감가에 하한이 생긴다. 다만 한국의 실제 거래가격 통계는 아직 공개되지 않아, 이 하한이 얼마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한국에는 유리한 조건이 하나 있다. 이력관리제로 배터리 식별번호가 이미 자동차등록원부에 기재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드문 출발점이다. 여기에 측정 표준과 진단 인프라, 데이터 접근권이 얹히면 “배터리 이력이 확인되는 중고 전기차”라는 상품 범주를 먼저 만들 수 있다. 그 범주의 값은 시장이 이미 550~1,100유로로 평가해 두었다.
결론
중고 전기차 시장의 문제는 배터리가 빨리 늙는다는 것이 아니다. 늙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지오탭의 2만 2,700대는 8년 뒤 81.6%를 남겼고, 58만km를 달린 아이오닉5는 87.7%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 차를 팔러 나온 사람은 그 사실을 증명할 종이 한 장을 갖고 있지 않다.
2027년, EU의 배터리 여권과 한국의 사용후 배터리법이 같은 해에 작동한다. 그때까지 남은 시간은 눈금자를 만들고 진단소를 짓는 데 쓰여야 한다. 잔존가치는 배터리에 저장되어 있지 않다. 측정과 기록, 그리고 그것을 믿게 만드는 제도에 저장된다.
편집 노트 — 이 기사는 국내외 시장 통계, 정부·기관 1차 자료, 학술 논문과 국책·연구기관 보고서를 포함해 약 180건의 자료를 교차 검증해 작성했습니다. 본문의 모든 수치에는 출처 하이퍼링크를 부착했으며, 기준 시점이 다른 데이터는 각각 명시했습니다. 감가율·잔존가치는 조사기관·시점·트림·주행거리에 따라 편차가 크므로, 상충하는 수치는 어느 한쪽을 택하지 않고 양쪽을 함께 제시했습니다. 데이터 수집 시점은 2026년 7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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